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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허영의 존재
파스칼은 인간을 "허영 덩어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이성적인 인간상과는 달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가진 것 이상으로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망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허영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병사든 요리사든 철학자든, 심지어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까지도 영예를 얻고 싶어 합니다. 허영은 마치 그림자가 항상 사람을 따라다니듯이, 우리의 삶과 행동 곳곳에 스며들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는 본질적인 욕구입니다.
사회 계층을 관통하는 허영
허영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나타납니다.
지배 계급은 비단옷, 황금, 거대한 건축물 등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찬양받으려 합니다. 실크로드조차 문명의 교류가 아닌 이러한 사치품 교류의 길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피지배 계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학벌(서울대, 연고대)이나 직업(의대, 법대), 비싼 물건 등을 추구하며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꾸미거나 실제 능력 이상으로 보이려는 "서글픈 허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허영의 핵심: 비교 의식
허영의 핵심에는 비교 의식과 비교 우위에 서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자신이 뛰어나 보이려면 옆 사람을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지게 만들려 하기도 합니다.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악성 댓글들도 이러한 비교 의식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장자의 이야기 속 객사는 이러한 허영으로 가득 찬 인간 사회를 상징합니다. 아름다운 부인이나 못생긴 부인, 심지어 객사에 사는 식구들까지 모두 허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장자의 해법: "내가 벌러지 같아라"
그렇다면 이처럼 깊이 뿌리박힌 허영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장자는 놀라운 해법을 제시합니다.
"내가 벌러지 같아라고 생각하면 딱 돼요."
스스로를 하찮은 벌레와 같이 생각할 때 비로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벌레에게는 어떤 찬양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타인의 칭찬이나 인정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자신을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칭찬받고 싶어 하는 허영의 근원적인 욕구를 끊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급진적 겸손을 통한 자유
이는 근원적인 자기 겸하(謙下)를 통해 허영의 사슬을 끊어내는 방식입니다. 스스로를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로 여길 때, 더 이상 타인과의 비교나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이 사라집니다. 그로 인해 외부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마치 그림자가 몸에서 떨어질 수 없듯이 허영이 인간에게 필연적이라고 보면서도,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됨으로써 외부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길입니다.
마무리
허영으로부터의 자유는 스스로를 지극히 낮은 존재로 인식하는 급진적인 자기 겸손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누구도 허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 사회에서, 장자가 제시한 이 해법은 여전히 유효한 지혜로 남아있습니다.
결국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을 구하지 않는 마음, 스스로를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겸손한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